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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nd of blow

비접종자도 사람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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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접종자도 사람이다

onyéul 2022. 1. 7. 10:35

 

 

방역패스, 학원·독서실 넘어 모든 시설서 멈출까···오늘 법원 심문

법원이 7일 방역패스(코로나19 백신 접종증명·음성확인제) 효력에 관한 심문을 연다. 지난 4일 학...

www.khan.co.kr

 

오늘 방역패스 집행 정지 신청을 받아들일 것인지에 관한 법원 심문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최소한의 생활과 생계 유지조차 불가능하도록 통제하면서 백신을 강요하는 것은 분명 위헌이다.

백신의 안전성과도 별개로 개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행정이 침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물며 지금의 백신정책은 코로나 전염병의 예방보다도 다른 무언가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모든 제약회사가 오직 서민들을 등쳐먹기 위해서 약을 개발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얀 가운이 시커멓게 되도록 땀 흘리며 일하는 연구원들 대다수는 나름의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코로나 백신이 이렇게까지 광범위하게 빠른 속도로 뿌려지게 되기까지 정말로 과학의 힘만이 작용되었을까.
백신을 포함한 모든 약물의 부작용은 다양한 상황과 환경에 영향을 받아 전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발현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기간의 임상을 거쳐 나오는 약물들조차도 몇 년 혹은 몇십 년 후에 밝혀진 부작용으로 폐기되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껏 어떤 화학약품도 이토록 성급하게 거의 모든 인간군을 대상으로 투여된 적이 없다.
이것은 전쟁이다. 그러나 전염병을 상대로 한 전쟁이 아니라 소수의 이권이 다수의 생명권에 칼을 들이미는 전쟁이다.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팬더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코로나는 이미 예견된 질병이었다.
끝을 모르고 팽창하는 자본주의의 일면도가 마침내 한계에 다다랐을 뿐이다.
그 어떤 작물도 유한한 면적의 밭에서 무한히 증식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대의 물질자본주의가 바로 그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현실의 물리력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닭들도 좁은 닭장에 몰아넣어져 무조건 많은 달걀과 무거운 살코기만을 목표로 하는 생활에 오래 노출되면 반드시 병에 걸린다.
사람들의 사회는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믿었다면 그건 생명에 대한 기만이다.
요컨대 앞전 세대가 무자비하게 확장시킨 “파이”라는 풍선이 그것이 담긴 그릇보다 더 커지지 못하게 되자 펑 터져버렸다는 것이다.
커질 만큼 커지면 알아서 나눠줄 테니 가만히 아래쪽에 앉아서 기다리라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제 미래 세대의 사람들은 인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 했던 진공 상태의 혼돈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이 빚을 대체 어떻게 갚을 것인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나는 이런 위기가 몇몇 “거대한 손”에 의해서 기획되고 예고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이 그렇게 쉽게 조작될 수 있을 만큼 조잡했더라면 애초에 이 정도 규모의 사회를 유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현대의 의사 결정 프로세스가 소위 “전문가 집단”의 테이블 밑에 가려져 대다수 민중의 감시 밖에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그 “전문가 집단”이란 대체로 서구(더 정확히는 미국)의 막강한 원조와 시혜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문명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그러한 문명이 얼마나 편향된 채로 발달되어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소비에트에서 배출한 신뢰성 있는 과학자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몇이나 될까.
그러나 과학은 이데올로기를 가리지 않는다.
과학과 과학에 기반한 기술은 정치 논리에 따라 휘둘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불행한 것은 바로 그런 상황이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때때로 발생해왔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이.

제약회사들은 어쨌거나 자신들의 백신을 가능한 더 많이 팔려고 한다.
음모론 따위에 기대지 않고서도 명백히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다.
많이 파는 만큼 많이 벌기 때문이다. 이미 사람의 건강과 목숨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사회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윗물에서 행정을 휘두르는 이들은 돈을 쫓는 일과 무관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절대 대다수 민중의 삶과 안전은 대체 누가 지켜주는가.


잊지 않겠다는 말만 가지고서는 잊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사람은 개돼지가 아니라는 것.
사람은 자신들의 주인에게 더 큰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온몸을 항생제로 가득 채워야만 하는 가축이 아니다.
사람은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사람이라면 정부가 강요하는 백신을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맞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자유로운 신체의 자기결정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유만으로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고립되는 것이 과연 정상인가.

비접종자는 이제 한국사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행정당국은 사람을 말이 잘 안 들어먹힐 땐 등 뒤의 태엽만 뽑아버리면 그만인 목각인형쯤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비접종자도 사람이고 우리는 이등신민이 아니다.
원치 않는 창씨개명을 당할 수도 없다.
백신이 정말로 필수불가결한 효력이 입증된 것이라면 기꺼이 나와 내 주변의 안전을 위해서 맞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사태는 그저 완력으로 몰아붙이는 마루타 실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불합리를 거부할 자격이 있다.


방역패스는 단연코 위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