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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nd of blow

산책 조금 오래 했다고 남의 가게에서 대놓고 뻗어버린 우리의 깡총씨. 이럴 때 보면 어른 강아지 어쩌고 하는 얘기가 다 꿈나라 얘기인 듯 싶다. 아직도 이렇게나 아가 같은데. 덩치 큰 강아지들은 자기가 항상 아가인 줄 안다는 게 얼마나 사랑스러운 말인지를 이 녀석들과 함께 살기 전까지는 몰랐었다. 하는 짓은 품 안에 쏙 들어오던 시절이랑 똑같은데 낑깡이 깡총이 둘을 합치면 내 몸무게와 맞먹는다는 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이 아이들로 인해서 한 뼘씩 어른에 가까워지는 우리를 보면 녀석들은 정말로 어른 수업 선생님 자격이 충분한 것 같다. 물론 열심히 가르치다가 선생님이 먼저 곯아떨어져버리는 이상한 순간들도 종종 있지만. 그래도 다 같이 행복하니까 된 거 아닐까. 아마도 그럴 것 같다. 마음이 ..

세화리에서 세화리로 이사온 제주풀무질. 같은 동네로 옮겨왔는데도 분위기는 많이 변한 것도 같다. 책장 옆에 올망졸망 놓여있는 사진들만 봐도 풀무질의 긴 역사를 조금은 체감할 수 있다. 특히나 쉽게 영접할 수 없는 광복이의 얼굴을 원없이 볼 수 있다는 게 포인트. 이건 비밀인데 광복이의 마음을 얻으려면 반드시 고기 간식을 바쳐야 한다고 한다. 역시 배운 강아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우리 낑깡총이도 부지런히 커서 서당 강아지가 될 수 있으려나. 아무래도 광복이처럼 되려면 갈 길은 아직 멀지 싶다.

"7호선 로스트 보이즈" 초회생산한정반 재킷의 팬아트 드로잉. 비 내리는 날 카페 로빙화에서 핫초코를 마시며 그렸다.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뻘쭘하지만 팬아트라고 생각하면 봐줄 만하다. 굳은 손으로 오랜만에 색연필을 쥘 때는 생각이 차분해지고 어지러운 머릿속도 한결 정돈되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비록 종이를 덮으면 아득히 또 사라지고 말 평형일지라도.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어릴 때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도 낡은 책상의 때 묻은 물감 자국을 보고 있으면 입가에 씁쓸한 무언가가 피어올랐다가 사라지곤 할 만큼.

남원리의 그림 그리는 카페 로빙화. 언제 가도 색연필을 잡고 싶게 만드는 곳이다. 비 내리는 날 가도 기분이 우중충해지지 않는 거의 유일한 카페기도 하다. 살강살강 안개비가 내리는 해변을 거닐다가 우울감을 녹여줄 핫초코 한 잔을 마시는 그 달콤함이야말로 이 계절만의 선물일 테니까. 생각해보면 로빙화뿐만 아니라 남원이라는 동네의 모든 것이 겨울보다는 여름에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왠지 마주칠 때마다 조금씩 더 낯설게 느껴지는 것만 같은 새하얀 파도의 유독 여명이 긴 파열음 때문일까. 겨울이 모든 소리를 삼켜버리는 계절이라면 여름은 그것들을 있는 힘껏 분산시키는 계절일 테니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밴드의 신규 앨범 "7호선 로스트 보이즈"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깡총이. 엄마아빠가 발매 전부터 예약했다가 한 달 만에 손에 넣은 앨범을 우리 깡총이는 가만히 앉아서 귓동냥할 수 있으니까 참 좋겠다. 이번 달에 공개된 "카시오페아 계류소"가 함께 수록되었더라면 훨씬 더 행복했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매력 있는 앨범이다. 옛날 앨범들에 비해 더 좋다기보다는 오히려 지금까지 나온 노래들 간의 결속을 더 견고하게 해주는 느낌이랄까. "사실은 후회뿐이라서"라는 가사는 "절대로 후회하진 않아"라고 외치던 몇 년 전 그 가사들의 대구라고 생각하면 더 아프게 들린다. 이래저래 갈수록 힘들어지기만 하는 세상을 가리지 않고 드러내는 아마자라시만의 정공법이 아무래도 제대로 먹혀든 것 같다. ..

카페 다금바리스타의 파트파임 서비스직 종사자 도나. 여기서 주문 안 하고 그냥 지나치면 눈빛 레이저에 쓰러질 것 같다. 제주도 토박이의 근엄함을 장착한 점잖은 호객 행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3년차 햇병아리 제주도민 되시겠다. 커피 꼭 시킬 테니까 한 번만 쓰다듬게 해주세요. 삐약.

카페 다금바리스타의 완벽한 카푸치노. 나도 저런 우유거품을 만들 줄 아는 바리스타였다면 돈 버는 게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커피 한 잔의 여유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불안감을 건져올리는 전직 자판기의 애환은 이렇게나 서글프다. 이날 읽은 책은 켄 로치 영화의 이야기를 담은 "비주류의 이의신청". 전혀 비주류답지 않은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읽기에 더없이 완벽한 책이었다고 하겠다. 비록 그날 하루의 감정의 여과기에는 껄끄러운 불완전함이 걸러졌을 뿐이었다고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