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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nd of blow

내가 제주도에서 다시 대전으로 돌아가기까지 3달 동안 이 친구는 혼자서 물 한 방울 마시지 않고서도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다. 그것도 놀랍게도 계속해서 자라나면서.

목포항에서 제주도로 입도하는 배를 타기 위해 서대전역에서 목포역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기다렸다. 배낭 하나 매고 출발하는 설익은 기대와 선로의 쇳기름 냄새 그리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분주한 소음. 이 떠남의 종착역에 무엇이 있는지는 그러나 그때는 섣불리 묻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단순히 떠나기 위한 작별이었다는 걸 스스로에게는 감추고 싶었는지도.

길을 잃을 걱정은 해도 길이 끊길 걱정은 없었던 내룍의 라이딩. 대전에서 국도를 타고 옥천을 가려고 했었다. 도중에 비가 너무 세차게 내려서 포기하기는 했어도. 대전에서는 정말이지 국도만 타면 한반도의 어디건 갈 수가 있었다. 갓길의 위험천만함을 버텨낼 수만 있다면 그랬다. 아스팔트가 빗물로 반짝거리는 깜깜한 야밤에 헤드라이트 하나 키고서 거진 목숨 걸고 달리던 그 스릴은 그래도 잊히지 않을 거다. 새벽 2시에 자전거 끌고 대청호 호숫가에 가서 엉엉 울다가 경찰차가 따라붙기도 했던 그 기나긴 방황도. 이제와서 무엇을 후회할 수 있을까.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쳤을 뿐이다.

대전 대동의 대동단결 카페. 산허리 주택가 한가운데 위치한 곳이라 시끄럽게 떠들 수는 없지만 대신에 야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코로나 이전에 머물었던 마지막 도시가 대전이었다. 일 년도 채 있지 못 했으니 살았다고 하기엔 뭔가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끔 그립고 가끔 꿈에 나온다. 이미 이때에 비해 많이 변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살이도 나도.

작년 여름. 공책에 아무렇게나 끄적여 놓았던 낙서. 근데 이게 대체 무슨 뜻이었는지는 지금에 와서도 모르겠다. 더 무서운 건 이런 낙서들이 공책엔 아주 많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이런 공책들이 그때 내가 살던 방에는 아주 많았다는 것이다. 그냥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몸무림이었는가 보다.

제주도로 넘어오기 전까지 정말로 우울감이 심했었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어쩌면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언젠가는 내가 아끼던 대나무과 식물을 분갈이한 직후에 갓 태어난 잡초 하나를 뽑다가 퍼뜩 눈물이 나서 거세게 울었었다. 이 잡초의 운명이 꼭 내 운명이랑 똑같은 것처럼 보여서. 나도 언젠간 이 잡초처럽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라는 선고를 받고서 아무도 모르게 뽑혀 뿌리가 말라 사라져 가겠지. 뭐 그런 생각. 여하간 이래서 실직이란 건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그 아무리 시국이 시국이라고 해도 이래서야 어디 돈이 있대도 밥 해먹고 살겠나 말이다. 내가 대전을 떠난 것도 결국은 그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밥을 빌어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이 둘은 특..

기나긴 장마 끝에 대전천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대전에서는 틈만 나면 강변길로 자전거를 탔었다. 비가 유난히 많이 왔던 작년 여름에는 자전거 휠이 절반까지 잠길 만큼 수위가 높아졌을 때에도 꿋꿋히 페달을 밟으며 다녔다. 제주도에 와서 가장 결핍된 것이 바로 페달감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때 더 원없이 즐겨뒀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무려나 젊을 때 이륜거를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에 나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자동차 면허는 못 딸 것 같다. 첫사랑에 대한 배신에의 본능에 가까운 거부감이랄까. 대전에서 타던 자전거는 무궁화호에 퀸제누비아호 타고 제주까지 가지고 와서 지금까지도 잘 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