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land of blow
바람에 날아가는 26인치 자전거 본문
바위 위에 앞바퀴와 뒷바퀴를 올려놓고 사진을 찍고 싶었다.
셔터를 두번째 누르는 순간에 자전거가 바람을 타고 모험을 떠나기로 했다.
내가 비명을 지르는 동안 알톤이는 흡사 탱탱볼처럼 탱 탱 탱 하고 몇 번씩이나 부딪히고 튀어오르며 바위언덕 아래를 굴러내렸다.
황급히 쫓아가 살펴본 내 소줌한 자전거는 그러나 놀랍도록 무사했다. 기적이란 게 있다면 이런 것이지 않을까 싶었다.
핸들 쪽의 프레임이 조금 파여나간 듯이 찍힌 것을 제외하곤 어디 한 군데 휘거나 부러지거나 기능을 상실한 곳도 없었다.
대단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대단한 자전거를 몰고 다니는 나 역시도 조금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한 달쯤 뒤에 나는 자전거를 도난당했다. 대단함은 그로써 증발돼버렸다. 이 녀석의 것도 나의 것도.
우리는 서로가 함께할 때만 대단해질 수 있는 자전거와 라이더였던 것이다.
비록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지금도 난 바닷가에서 바람에 날라가고도 살아남은 자전거는 "내" 자전거뿐이었을 거라고 믿는다.
세상에 둘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는 없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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