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land of blow
삶을 위한 낯익음들 본문
꿈속에서는 늘 같은 곳을 헤맬 때가 있다.
제정신의 기억에는 박혀있지 않지만 밤과 낮의 잠결에 씌여 꿋꿋하게 나를 인도하는 나만이 인지되는 공간들.
예컨대 항상 같은 영화가 흘러나오는 지하의 한 카페.
간판과 영화와 그들의 페르소나는 꿈에서 깨는 순간 잊어버리고 말지만 그럼에도 같은 공간을 꿈꿀 때마다 그들은 늘 그곳에 있다.
아니면 항상 같은 굉음이 만들어지는 철로 위의 낡은 기차와 그 기차를 둘러싼 끝도 없는 자작나무숲.
차창 밖으로 자작나무 사이 숲길을 볼 때마다 나는 옛날에 죽은 내 강아지와 산책하기에 참 좋은 곳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젠간 반드시 그 강아지와 함께 숲속의 역에서 내려봐야겠다고도 생각한다. 비록 지금은 더 멀리 가고 있을지라도.
그러나 꿈이 끝나면 죽은 강아지도 꿈속의 자작나무도 분명히 더 멀리 가고 있던 그 목적지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다.
언제 같은 꿈을 다시 꿀 수 있을지는 전혀 알 수가 없는데도.
그래서 기다리거나 염원하거나 하지도 않고 그저 또 흘려보내다가 언젠가 또 그 순간이 찾아오면 다시 그때처럼 앓고 말 뿐이다.
삶이 그나마 살만 한 것은 삶의 운용이 이 꿈들의 운용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마주처야만 이전에도 만났던 적이 있구나 하고 몸서리치게 되는 것들.
마주치기 전까지는 무슨 짓을 해도 떠올릴 수 없도록 그저 곤히 잠들어 있는 것들.
감각만이 감각할 수 있는 모든 물체들. 숨소리와 그림자에 매달린 모서리들.
그런 것들이 삶에는 산재해 있기 때문에 바로 그 연고로 사람은 미치지 않고서도 정신의 파편을 모아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꿈과 환각과 도취가 존재하는 필요는 같다.
다만 살기 위한 것이다.
초가을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를 보고서 십여 년 전 이맘때에도 같은 잠자리를 본 적이 있었다는 안도감이 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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