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land of blow
내가 형아 귀 세워주꾸마 본문
똑같이 먹이고 똑같이 입히고 똑같이 놀아주고 재웠는데 나중에 가선 총이는 귀가 앉았고 깡이는 귀가 섰다.
깡이의 귀가 마침내 섰을 땐 꼭 학원 한번 안 보내고 의대에 입학시킨 기분이었다. 비유가 정말이지 속물스럽지만 정말로 딱 그랬다.
꼭 5개월 요 무렵이 깡이 귀가 막 설락말락 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미운 오리새끼 구간이었달까.
병원에 가서 상담해봤을 땐 그 앉은 것도 선 것도 아닌 해리포터 도비 귀 같은 상태가 어쩌면 최종형일 수도 있다는 말도 들었었다.
물론 도비 귀라도 깡이는 여전히 사랑스럽지만 그래도 서긴 섰으면 좋겠는데.
역시 비유하자면 애가 공부를 안 해도 튼튼하기만 하면 더 바랄 게 없지만 그래도 알아서 자습 좀 하기를 바라는 그런 거였겠다.
반면에 총이는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리트리버 귀였기 때문에 애초에 그런 쪽으론 기대가 없었다.
연필 쥘 나이부터 책 펼쳐보는 것에는 담을 쌓고 자라서 차라리 자유롭게라도 자라라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아이.
하지만 공부를 하기는 하는데 어딘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정도로만 하면.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는 자꾸 욕심이 나는 거다.
귀가 좀 서나 서나 싶다가도 자꾸만 팔랑거리는 깡이의 귀를 보는 심정이 어땠을지 이쯤이면 대강은 설명이 된 거지 싶다.
걱정한 보람이 있었는지 깡이는 결국 어엿한 세모 귀의 강아지로 자랐다. 아직 귀 끝이 살짝 까딱거리기는 하지만 그 정도야.
그래서인지 깡이와 총이를 보는 사람들마다 깡이가 나이가 훨씬 더 많냐고 묻곤 하는데 둘은 명실상부 쌍둥이다.
다만 총이는 피터팬 증후군이라 아가 때 귀에서 멈춰버렸다는 게 다를 뿐. 물론 그래서 더 깜찍한 마스크로 남긴 했지만.
그러고 보니 예전부터 총이는 깡이 귀를 종종 핥곤 했었는데.
이제 보니 모든 어린 강아지에게 부여되는 "귀 섰거라 에너지"를 형아한테 몰빵해서 나눠주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해서 자기는 언제까지나 꼬마애로 남고 형아는 멋있는 어른 귀를 갖게 되면 서로 윈윈이니까.
역시 다 계획이 있었던 기특한 총이였던 거다. 뭐 해석은 자유니까 개꿈이 너무 원대한 게 아니냐는 이견은 받지 않기로 하겠다.
'andante > timelin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간요정 총 (0) | 2022.04.15 |
---|---|
창 밖은 흰 눈이 내릴 때만 보는 걸로 (0) | 2022.04.13 |
어른이라는 거울 (0) | 2022.04.04 |
태평동 파킹, 2년 만의 하얀 대문 (0) | 2022.03.29 |
파란 불을 기다리는 기다려 (0) | 2022.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