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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이라는 페달과 체념이라는 고삐 본문

log/re:epilog

미련이라는 페달과 체념이라는 고삐

onyéul 2021. 8. 5. 17:55

 

내 자전거 -였던 것- 를 도둑맞은 지 벌써 세 달이 넘게 지났다.

그 뒤로 딱 한 번 삼천리대리점에 들어가서 새 자전거들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마음에 적잖이 드는 녀석도 발견하기는 했다. 프레임 설계가 다부지면서도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가벼워서 카본이냐고 물었다.

알루미늄인데 좀 고급 알루미늄이라고 했다. "고급"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고급스럽게 들린 적은 처음이었다.

대만제였고 내가 좋아하는 무광택에 약간 칙칙한 색감의 베이지색 도색이었다. 쉽게 말해서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차 한 대 값이 내 한 달 치 월급과 맞먹었으므로 발길을 돌리는 것은 너무도 쉬울 것이 뻔한 일이었다.

 

뭐 항상 하고 사는 생각이지만 그날따라 유독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단 생각이 들었다.

기술이 발전하면 뭐하나. 알루미늄으로 그토록 탁월하게 카본 흉내를 낼 수 있으면 뭐하나. 어차피 살 수 없는 이에겐 그림의 떡인데.

문득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앞에 빼곡히 일렬로 늘어선 아이들의 등하교 자전거.

하지만 거기에도 서열이 있었고 돈의 논리가 있었다.

거진 중고차 값에도 비할 만한 비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애들이 교문과 가장 가까운 쪽으로 주차하곤 했으니까.

그래서 가장 흔한 게 안장 도난과 핸들 도난이었다. 서로 뺏고 빼앗기고 훔치고 빼돌렸다.

대부분이 반쯤은 심술이나 장난이었겠지만 일단 한 번 경찰에 넘어가고 나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비싼 자전거의 비싼 안장은 가난한 아이의 부모가 부잣집 아이의 부모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죄해야 할 만큼의 값어치가 있었다.

아무도 대체 왜 집이 근방 2키로 안에 있는 초등학생 아이들의 자전거가 몇 십 몇 백씩 나가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 아이들의 집안이 돈이 많은 것이었고 거기에 토를 다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다만 어린 마음들의 시기와 박탈감이 뺀찌와 테러로 번져나갔을 뿐이다. 교정 앞에 cctv가 설치되기 전까지는.

 

더는 등하교 자전거를 남몰래 부러워하지 않을 만큼은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기술은 발전하고 있다고 해도 사회가 기술을 운용하는 방식은 역행하고 있다는 것을 그저 어렴풋하게나마 체감할 수 있을 뿐이다.

너도 나도 마치 앵무새처럼 자유를 말하지만 실은 발가락에 묶인 쇠사슬의 두께가 서로 다를 뿐이다.

그러면서도 서로 더 비싸거나 비싸보이는 쇠사슬을 기어이 사고야 말겠다고 야단들이다.

그 쇠사슬의 십 분의 일만 녹여도 쇠사슬을 끊어낼 칼날을 주조할 수 있다는 사실에는 굳이 처절하게 등돌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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