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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nd of blow

장서록(i) 본문

cell/bookshelves

장서록(i)

onyéul 2021. 10. 13. 21:49

 

19살 이후로 세려면 손가락이 모자를 정도의 이사 -혹은 이직- 를 했고 그러면서 세려면 바둑알이 모자를 정도의 책들을 버렸다.

마지막 이사는 대전에서 제주로 오면서였고 이때만 해도 얼추 80여 권을 고물상에 내다 팔았다.

100만원 어치의 책들을 몇 천원의 헐값에 넘기면서도 돈 아깝다는 생각은 않는 것이 그 책들에 대한 최후의 예의일 거라고 믿었다.

리어카에 엉거주춤 쌓인 채 kg 당 얼마로 환산된 내 한때의 보물들은 그저 흰 종이에 검정 잉크의 폐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내 이십 대 초반도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조용히 페이드아웃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다만 그들이 완전히 소각되지는 않기를 바라는 것이었겠지만 실은 그마저도 원치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기억은 들춰보지 않으면 그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 한다는 점에서 책들과 닮았다.

숱한 사람과 사람의 인연의 함축물들이 대개 그렇듯이.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것들은 수 년 혹은 수 개월 안에 고물로 되기에도 멋쩍은 몰골로 헐어지고 뭉그러지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내게 남아있는 책들이 존재하는데 이 의아한 현상을 그나마 정연하게 간추려보는 것이 이 장서록의 의의라 하겠다.

1열은 책의 제목이다.

2열은 책의 저자 혹은 책임편집자다. 특히 좋아하는 저자가 표기된 항을 회색으로 블록했다.

3열은 책의 펴낸 곳이다. 회색으로 블록된 항이 뜻하는 바는 2열의 그것과 같다.

4열은 변역서에 한해 그 원서가 출간된 년도다.

5열은 소장본이 출간된 년도다. 소장본이 초판초쇄본일 경우에 연청색으로 블록했다.

6열은 책을 구입한 서점 혹은 지역이다. 특히 좋아하는 서점이 표기된 항을 황색으로 블록했다(즉 2열과 3열의 논리를 답습했다).

마지막으로 색깔의 구별에는 의미가 없다. 그냥 회색과 연청색과 황색이 보기가 좋을 것 같았다는 것 외에는.

 

지금까지 만나온 수많은 책들 가운데 이 목록에 자리잡은 것들이 특별히 내 정체성의 확립에 더 도움이 된다고 믿지는 않는다.

단지 인연이 짧았던 것이 떠났고 인연이 조금 더 길었던 것이 남았을 뿐이다.

따라서 일일이 사족을 달고 싶은 마음은 접어둔다.

이 장서록은 나날이 녹슬어가는 기억의 퇴로를 차단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충분한 소임을 다했다고 사료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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