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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nd of blow

수평투상_원룸 본문

cell/artwork

수평투상_원룸

onyéul 2022. 2. 13. 22:31

 

제주도로 이주하기 직전까지 살았던 대전 중구의 원룸.

이 빌라는 1층에서 3층까지가 통으로 호수 작명이 독특했다. 301호 다음이 303호 그리고 그 다음이 302호인 식이었다.

내가 살던 곳이 바로 303호였는데 건축허가를 받은 이후에 301호를 쪼개서 만든 오직 임대료만을 위한 방이었다.

덕분에 현관을 직각으로 마주한 벽에는 한때는 301호의 다른 방으로 이어졌을 방문이 벽지만 덧발라진 채 그대로 남아있었다.

요컨대 애초에 한 가구가 살겠금 설계된 공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주거공간이 아니라 301호의 주 공간이었을 뿐이다.

남의 집 거실이던 장소에 억지로 싱크대와 변기와 현관문만 설치해놓고 원룸이라고 세를 받아도 내놓는 족족 나간다고들 했다.

그것이 빈곤층 도시민의 생활상이었고 나는 모텔촌 한복판에 있어서 순찰차도 다니기를 꺼리던 이 동네에 100에 20을 주고 살았다.

 

치안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였다.

그렇지 않아도 주변 건물들이 죄다 모텔이라 거리가 밝은 편은 아니었지만 재개발 현수막이 붙은 뒤로는 특히 더 그랬다.

자기가 사는 곳도 아닌 빌라 앞에서 입구를 막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피하느라 밤 10시에 퇴근하고도 11시까지 배회하곤 했다.

집 밖만 험난했다면 그나마 나았다.

바로 옆집이었던 302호는 술 장사를 하는지 다른 장사를 하는지 새벽부터 아침까지 고성방가와 고함이 없는 날이 더 적었다.

거의 내 또래의 젊은 사람들끼리만 사는 것 같았는데 드나드는 사람이 대체로 날마다 바뀌는 것 같았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은 어차피 경찰들도 무서워서 건들지 못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좁은 복도에 303호 현관문은 거의 우겨넣은 수준이어서 문을 열 때마다 옆집에서 내다버린 술병들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혹시 마주칠까 두려워 2층 계단에서부터 조마조마하며 집에 들어갈 때까지 경계해야 했던 건 항상 나였다.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출근해야 하는 새벽마다 당장이라도 찾아가서 싹 다 죽여버리는 상상만 하다가 겨우 잠드는 날들이 계속됐다.

 

마침내 일을 그만 둔 뒤부터는 기다렸다는 듯이 불면증이 찾아왔다.

시끄러운 소음과 실직이라는 스트레스로 범벅된 지독한 불면은 아침 9시에 잠들고 저녁 5시에 깨는 것을 당연하게 만들어놓았다.

그 집을 어떻게든 떠나겠다고 결심한 건 강제로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3개월 째 이어가던 무렵이었다.

그 전까지 어떻게든 버텼던 건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 금방 다시 일자리를 구할 거라고 믿어서였고 월세 20이 포기가 안 돼서였다.

현관문을 열면 곧장 변기와 세탁기와 싱크대와 이부자리가 한눈에 조망되는 그 말도 안 되는 원룸이 그래도 보금자리였기 때문에.

그리고 피할 수 있는 다른 곳이란 없기 때문에. 그 혼돈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303"이라고 적힌 현관문은 약간 수평이 안 맞아서 모서리 부분에서 바람이 더 많이 불었다.

네모난 현관 바닥은 9평 남짓한 원룸 크기에 비해선 꽤 넓었고 턱은 높지 않아서 먼지가 잘 날렸다.

그 오른편이 싱크대였는데 그래도 딴에는 리모델링 후 첫 입주라 그 쪽만 보면 새 집 같기도 했다. 바로 옆에는 냉장고가 있었다.

침대를 놓기엔 좁아서 현관과 욕실 사이에 패드를 깔고 바닥에서 잠을 잤다. 자다가 보면 머리가 현관에 있거나 발이 욕실에 있었다.

그리고 발코니를 둘로 나눠 각각 욕실과 세탁실로 만든 공간은 타일 바닥이었고 벽 대신 자리한 큰 미닫이문은 불투명 유리였다.

처음에는 여닫이문이 있는 것보다 넓게 보이고 좋은 것 같았지만 물 쓰는 공간이다 보니 문틀에 곰팡이가 많이 생겼다.

창문은 현관에서 가장 먼 벽에 욕실과 세탁실을 가로지르는 북향 창문 딱 하나였다.

그마저도 철창에 녹이 많이 슨 데다가 모기장이 변변찮아서 여름엔 모기 때문에도 고생이 많았었다.

게다가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창틀에서 물까지 샜다. 똑 똑 똑 물 떨어지는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려서 미쳐버린 뻔도 했었다.

겨울에는 좀 나았나 하면 한 달 난방비가 8만원이었다는 것밖엔 기억에 없다.

월세도 굶어가며 내던 시기에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 작은 집에 따뜻한 물도 아껴가며 살았는데도 그랬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안 좋은 점만 있는 집이었던 것 같지만 좋은 점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4층은 옥상이라 이불 빨래 널기가 편했다는 것. 그리고 밤에 보는 야경이 그래도 꽤 예뻤다는 것 정도였으려나.

 

가뜩이나 삭막한 도시가 급속히 황폐화돼는 걸 지켜보는 건 곤욕이었지만 그래서 떠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더 탓할 것은 없었다.

어쨌거나 원룸은 사람이 오래 살아도 될 만한 곳은 아니다.

아무리 둔감하고 옆집이나 이웃에서 베를 짜건 박을 켜건 상관 안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원룸을 살다보면 차츰 앙심 같은 게 생긴다.

베개를 현관 앞에 둬야 하거나 먹는 데와 배설하는 데가 3미터도 채 떨어져있지 않은 집에서의 생활은 사람을 어떻게든 병들게 한다.

이런 건 사는 것이 아니다. 연명하는 것일 뿐이다. 도살장을 위해 살 찌우는 돼지나 양처럼.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막상 이런 생활에 길들여지면 거기서 발을 빼기가 정말이지 어렵다는 것이다.

이 집을 떠난 뒤에도 한참을 더 바퀴벌레같이 살았다는 걸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이야기다.

 

303호 원룸을 완전히 청산한 건 제주도에 이주하고도 2달이 더 지난 후의 일이었다.

보증금과 이런저런 수리비까지 해서 200만원을 시원하게 날리고 지리멸렬했던 도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빅토르 위고가 말했듯이 생각의 차원은 한 번 다른 차원으로 도약하면 결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주거의 차원도 그렇다.

사람답게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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