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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nd of blow

제주도에서는 감저라고 부르는 고구마. 봄이 되기 전에 쪄먹고 남은 것들을 물에 담가 뿌리를 내리게 하고 봄이 돼서 텃밭에 심었다. 어느 계절에나 비가 많이 오는 제주도의 날씨에 안성맞춤인 작물. 우후죽순이라는 말은 땅과 상생하는 모든 푸른 것들에 들어맞는다는 걸 낮은 담장의 작은 텃밭 아래서 이렇게 또 배워간다.

모종을 얻어 심은 뒷마당의 방울토마토. 한낮의 햇빛을 받은 잎에서는 언제나 채 여물지도 않은 열매의 익숙한 즙향 같은 것이 묻어나곤 한다. 가만히 맡으면 숨이 저절로 편안하게 들이쉬어진다. 언제나.

커피박과 대나무잎으로 뒷마당에 심은 방울토마토와 고구마에게 거름으로 줄 때 쓸 퇴비 구덩이를 채웠다. 좋은 거름이 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기다림이다. 사람은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햇빛과 빗물과 지렁이의 숨결이 구덩이 안의 설익은 것들을 쓸모가 되도록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먹고 자란 뿌리들이 다시 다른 누군가의 거름이 되고. 생명은 또다시 순환할 것이다. 하나의 방향으로 흐르지만 반드시 이윽고 만나게 될 거대한 원을 그리고 또 그리면서.

소리 없이 피어서 초점 없는 눈가에 녹아든 앞마당의 그 무명의 꽃들은 무밭이 갈아엎어질 때 무꽃과 함께 잘려나갔다. 하지만 꽃씨가 살아있다면 내년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감내한 침묵임을 모르지 않으니까.

봄비가 지나가고 햇볓이 반짝 비치는 집 앞의 산책길. 물웅덩이에 비치는 새하얀 구름에 무지개도 부럽지 않을 것만 같다.

노을 질 때가 가장 예쁜 화순리 금모래해변에서. 찰박찰박 물가의 모래를 밟아보며 발자국을 찍는 아이들의 모습은 눈이 시리도록 언제나 사랑스럽다.

화순리의 부루잉카페 화순별곡. 바로 앞에 바닷가가 있어서 아이들 데리고 종종 산책 삼아 가던 곳이다. 의젓하게 앉아있다가 저 예뻐해주는 사람만 보면 신나서 애교 부리는 기특한 쌍둥이들 덕분에 엄마도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었다. 어쩌면 이렇게 말도 잘 듣고 잘 배운 티가 나냐는 말을 오만 번 들었을 정도면 누구라도 기특할 만하지 않을까. 자식새끼 주접이 너무 길어져도 곤란하니까 일단 여기까지. 어쨌거나 결론은 우리 애들 예쁜 걸 알아봐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는 것 정도로 해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