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land of blow
출간공고_빛 중판 1쇄 본문
나의 첫 시집을 낸 지 벌써 100일 가까이가 지났다. 미루고 미루던 중판 출간을 궤도에 올려본다.
책을 낸 사람이 된다는 것에의 어설픈 소회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짧은 편지 중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해도 좋을 것 같다.
"심지어는 내가 이제 곧 새 책을 출간한다는 상황까지도 내 삶을 뒤틀어 변화시킬 하나의 요소입니다."
"그로써 나는 무언가를 상실하는 겁니다. 즉 출간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그 정체성을."
"설령 실수나 나약함 혹은 불완전성 같은 좋다고 여길 수 없는 요소들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결국 상실은 상실입니다."
"내 친구들은 내가 당대 최고의 시인이 될 것이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쓴 글들을 읽었을 뿐 내가 쓸 수도 있었을 글들은 읽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의 의미를 내가 알 수나 있을까요?"
"아마도 명성에서는 죽음과 허무의 맛이 날 것입니다. 승리에서 부패의 맛이 나는 것처럼."
나는 책을 내면서 책을 낸 적 없는 나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했고 중판의 원고를 편집하면서 불완전성마저도 미약하게나마 상실했다.
그것이 발전과 진보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결국 상실은 상실이고 그래서 나는 한동안 더 슬픔에 잠길 것이다.
어쩌면 죽음과 허무의 맛조차 별 것 아닌 것에 불과하다는 걸 스스로 알게 되기 전까지는.
어쨌거나 이런 "돈도 안되는 거"에 그래도 관심을 가져주시며 내가 당대 최고의 시인이 될 거라고 북돋아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몇 명 되지도 않더라도 독자는 독자니까. 저자는 그에 대한 책임을 죽을 때까지 다할 것이다.
설령 그것이 지금보다도 훨씬 더 큰 상실을 의미한다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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