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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nd of blow
떡잎부터 문지기 기질이 남달랐던 총이. 몹시도 졸린데도 통행세 받으려고 눈 부릅 뜨고 지키고 있다. 총이를 예뻐해주지 않고서는 아무도 이 문을 지나갈 수 없다. 세상에나 무서워라.
대전에서 열차 타고 다시 서울로 가는 길. 드넓은 논밭이 끝없이 펼쳐지는 창 밖의 풍경이 신기하지도 않은지 내내 꿈나라다. 며칠 간의 장거리 이동 강행군에 멀미도 없이 잘 따라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일 거다. 오죽 피곤했으면 평소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이동가방 안에서도 저렇게 딥슬립을 할까. 안쓰럽고 짠하기도 하고. 하지만 덩치가 커져서 멀리 가는 여행을 잘 못 하게 된 요즘에 들어서는 어릴 때 여기저기 다녀본 게 한편으론 다행스럽기도 하다. 깡이와 총이의 기억 속에 그때 그곳에서 보고 겪은 것들이 잊지 못 할 배움과 각인으로 남아있다면. 당시에 겪었던 이런 저런 힘듦은 그것만으로도 보상 받은 거라고 믿을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어쨌거나 모두 지나고 난 뒤에는 가장 아름마운 추억들만 남으니까. 지난한..
똑같이 먹이고 똑같이 입히고 똑같이 놀아주고 재웠는데 나중에 가선 총이는 귀가 앉았고 깡이는 귀가 섰다. 깡이의 귀가 마침내 섰을 땐 꼭 학원 한번 안 보내고 의대에 입학시킨 기분이었다. 비유가 정말이지 속물스럽지만 정말로 딱 그랬다. 꼭 5개월 요 무렵이 깡이 귀가 막 설락말락 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미운 오리새끼 구간이었달까. 병원에 가서 상담해봤을 땐 그 앉은 것도 선 것도 아닌 해리포터 도비 귀 같은 상태가 어쩌면 최종형일 수도 있다는 말도 들었었다. 물론 도비 귀라도 깡이는 여전히 사랑스럽지만 그래도 서긴 섰으면 좋겠는데. 역시 비유하자면 애가 공부를 안 해도 튼튼하기만 하면 더 바랄 게 없지만 그래도 알아서 자습 좀 하기를 바라는 그런 거였겠다. 반면에 총이는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리트리버 귀..
태평동 카페 파킹의 상주 강아지 원두. 원래 이름은 카페 이름을 따라 파킹이었는데 부를 때마다 잘 못 알아듣는 척을 하는 바람에 원두로 바꿨다고 한다. 무려 자기 이름을 스스로 선택한 댕댕이 되시겠다. 제주도로 이사한 뒤로 무려 2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나를 기억하는지 어쩌는지 영 심드렁한 것도 같고. 하지만 꼬물이들이 자기 사료도 뺏어먹고 장난감도 제멋대로 갖고 노는데도 은근히 봐주는 걸 보면 나를 아주 까먹은 건 아닌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동생들 주는 건 아니다. 빌려주는 것과 주는 것의 차이를 아는 데서 사회화는 시작되는 법. 낑깡총은 이날 자상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과 조건 없이 나누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걸 배웠다. 내 것과 남의 것이 없는 유아기의 세계에서 한 걸음 더 벗어난 우리의 낑깡총..
대전에 살 때 일주일에 한 번씩은 들렀던 태평동의 카페 파킹. 제주도로 떠나올 때까지 굉음을 내며 공사가 한창이던 카페 옆의 공영 주차장은 어엿하게 완공되어 든든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덕분에 주변이 훨씬 깔끔해졌지만 뭐랄까 어딘가 부산스러우면서도 은근한 기대감이 돌던 그때의 그 분위기가 아니었달까. 모퉁이를 돌아 자전거를 세워놓으면 언제나 공사장의 높다란 철제 구조물들 옆에서 조용한 얼굴로 마중하던 하얀 울타리와 대문. 그러나 멀끔해진 길가 한가운데 당당하게 눈에 띄는 간판을 보노라니 과연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이 체감돼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곳은 이제 더 이상 구도심 속 나만의 오아시스가 아니구나.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꽤 오랜 시간 가장 좋아하던 카페와 그 공간 한 구석에 이렇게 다시..
어지러운 도심의 교차로.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와 빠르게 지나치는 차들 사이에서 바짝 얼어버린 낑깡총. 왜 기다리는지는 모르지만 엄마가 기다리니까 같이 엉덩이 착 붙이고서 기다려를 한다. 금방 파란 불이 될 거야. 어쩐지 도심의 분위기에 의기소침해진 듯한 까만 눈은 지금 이 순간 나만을 향해 있는 유일한 것. 엄마가 지켜줄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 어디를 가더라도.
계단을 올라는 가도 내려는 못 오는 5개월 개린이들. 엄마가 직접 시범을 보여줘도 절대로 따라는 못 하겠다며 궁딩이 딱 붙이고 실랑이 중이시다. 날개만 달아주면 날라갈 수는 있어. 그치만 걸어는 못 가겠다구. 그렇게 말하고 싶기라도 한 걸까. 결국 결론은 엄마의 팔뚝 힘줄만 열일하는 것으로 나고야 말았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우리 낑깡총이들도 물론 귀엽고 깜찍하지만 그럼에도 이날의 스포트라이트는 갈치 코스튬의 그레이하운드들의 독차지였다. 기다란 다리로 훌쩍훌쩍 점프할 때마다 번쩍번쩍 빛나는 게 얼마나 멋있던지. 우리 애들이 어디서 미모로 기가 죽을 애들은 아닌데. 역시 옷이 날개인 건 못 당해내는 것 같다. 높은 건물 옥상의 전층을 쓰는 "댕라운지". 제주도 애월의 "멍포레스트" 못지 않은 넓은 운동장만으로도 충분한 메리트였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 대전에 묵을 일이 생긴다면 무조건 이곳 근처로 숙소를 정하지 않을까. 당장은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는 얘기 같지만 또 모르는 일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반려견 전용 여객기를 항공사마다 앞다퉈 출시하게 될지 누가 알겠냐는 거다. 그럼 그때는 애들을 데리고 전국의 내로라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