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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nd of blow
따뜻한 남쪽으로 튀어온 제비들. 봄은 오랜만에 얼굴 비춘 제비가 박씨도 안 내놓고서 집 구하러 다니는 계절이다. 바닥에 응가를 떨구고 도망갈 때는 머리가 지끈거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반가운 손님이다. 지금쯤이면 새끼 제비들도 무사히 태어나 자라고 있으려나. 늘 인사도 없이 왔다가 떠나버리는 게 괘씸하기는 하지만서도. 올해의 계절들도 또 잘 지내다 가길. 매해를 그래도 바라게 되고야 만다.
마당 한 구석에 길고양이 급식소가 있는 냥댕이 친화 카페 고스란. 덕분에 낑깡이와 깡총이는 갈 때마다 고양이 구경하랴 새 구경하랴 바쁘시다. 테라스에서는 수풀 사이로 새들이 잘 보이고 1층 실내가 내려다보이는 테이블에서는 냥이들이 잘 보인다는 건 이 녀석들만의 비밀. 엄마아빠한테조차 안 가르쳐주는 코드제로 탑 시크릿이다. 그러니까 눈 마주치면 모르는 척. 쉿.
유리창 너머로 새 구경하는 이 시대의 청년들. 비상하는 자유로움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용케도 배웠구나.
생일이 지나고 케잌은 남았다. 딸기도 남았길래 증류주에 담가서 즉석 딸기주를 만들어봤다. 맛은. 그냥 술맛이다. 역시 술은 함께 마실 때가 좋다. 혼자 먹는 술은 알콜을 가득 들이켠 딸기만큼이나 쓰고 텁텁할 뿐.
아침에 화순리에서 가족사진을 찍고서 점심 때 곧장 제주시로 달려가 책만 다섯 권 사가지고 돌아온 제주 북페어. 폐장 시간이 촉박해서 느긋하게 둘러보지 못 한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내년에는 꼭 우리 출판사 이름으로 직접 부스 차리고 이틀 내내 후회 없이 누려볼 수 있기를.
생일 사흘 전부터 예약해뒀다가 해질 무렵에 부랴부랴 픽업하러 갔던 케잌가게 슈가램프. 나를 쫓아온 낑깡이와 깡총이도 달콤한 냄새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킁킁대며 갈 생각을 안 해서 혼났었다. 내가 원한 디자인 그대로 세상에서 가장 예쁜 생일케잌을 만들어주신 사장님께 심심한 경외를.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맛도 최고였다. 다음에 또 케잌 결 일이 생기면 꼭 다시 주문하고 싶은 곳.
사장님들은 이미 퇴근하신 단골 카페의 테라스에서 모기 몰려올 때까지 내 첫 시집을 꿋꿋히 읽어준 친구놈. 생각보다도 많은 이들이 책에 관심을 가져준 덕분에 다음 책을 낼 용기가 생겼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