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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nd of blow
언젠가 시집을 내게 된다면 표지로 쓰려고 만들어놓은 이미지. 시는 한 마흔 편 정도는 모인 것 같은데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주기가 싫어 그저 신주단지처럼 모셔만 두고 산다. 시집의 이름도 정하지 못했는데 일단 가제는 snailfeet. 하지만 이걸 '달팽이의 발'로 직역하면 뭔가 상당히 웃길 것 같아서 다른 적당한 이름이 떠오를 때까지 덧없이 기다리는 중이다. 정말 내가 시집을 낼 날이 오기는 올까. 글 쓰고 싶다는 말이야 밥 먹듯이 하곤 했지만 내기 진심으로 모든 걸 걸고 글을 써본 적이나 있기는 한 걸까. 어차피 문학해서 먹고 살 길은 없다는 때깔 좋은 핑계로 나 자신을 비춰보는 일로부터 그저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샘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시간이 아무리 새벽 언저리로 치달려도 도무지 밤 같지가..
어릴 때부터 안톤 체홉을 너무 좋아해서 나도 요절을 하고 싶었다. 김광석은 마흔둘에 죽었고 체홉은 마흔넷에 죽었으니 나는 한 마흔셋에 죽으면 뽀대도 나고 적당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아직도 20년이나 더 남았다는 사실이 이렇게까지 두렵게 느껴젔던 적은 좀처럼 없었다. 늙음보다 더 불행한 것은 쉽게 녹슬지도 못하는 비루한 무채색의 젊음일 것이다. 기왕에 그렇다보니 빛을 다루는 일에나 더 익숙해지면 좋겠다. 죽음을 앞두고서 "검은 빛이 보인다"라고 했던 이는 또 언제적의 선인이었는지를 간과하기 위해서라도.
10년을 넘게 키운 개가 죽은 후 49일이 지날 때까지 육식을 할 수가 없었다. 종교는 없었지만 왜 하필 49제라는 것을 지내는지 알 것 같은 시간들이 흘렀다. 그것은 예컨대 비애의 공소시효 같은 것이었다. 처음 일주일은 길을 가다가 돼지고기 굽는 냄새만 맡아도 구역이 났다. 태워지는 그것이 살아있던 무언가의 살코기라는 사실을 이성이 아닌 본능으로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햄이 들어간 줄 모르고 사먹은 빵에서 물컹하는 육향을 맡았을 때는 혓바닥을 뜯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보름 정도가 지나자 대부분의 음식에 들어가는 가공육에는 차츰 거부감이 없어졌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자 고깃집에서 나는 살 타는 냄새가 다시 익히 알던 예의 입맛 도는 냄새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49일을 꼬박 채워 육식을 거부했던 것은 ..
delta3200 필름의 코닥 일회용 카페라로 찍었다. 사람이 쌓아올린 벽돌보다도 사람들끼리가 더 단조롭게 직조된 세상. 무엇을 기대하기 위해서 들여다보는가.
delta3200 필름의 코닥 일회용 카페라로 찍었다. 5년 전과도 똑같은 풍경들. 달라진 것은 이들이 언제나 내려다봤을 사람들뿐이다.
delta3200 필름의 코닥 일회용 카페라로 찍었다. 손잡이가 꺾인 채 버려진 아동용 자전거. 담벼락 아래에서 울리는 빗소리를 들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