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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nd of blow

대전 태평동의 공영주차장 바로 옆에 위치한 카페 파킹. 터줏대감 원두가 언제나 졸린 눈으로 꼬리를 흔들며 맞아주곤 했었다. 그 이름도 거창한 "코로나 실업자"가 되어 그 좋아하던 술집도 못 가고 카페나 전전하던 시절 내 유일한 바깥친구였던 원두. 그랬던 내가 이젠 제주까지 와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선 다시 술을 마시기도 하고 그럴 여유가 생겼단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아직 같이 술 마셔줄 친구가 많지 않다. 헛살아가는 인생을 가지고서 하루하루 나이먹는 중인가 보다.

대전 살 때 자주 가던 카페 이스터에그. 다락방이 있는 동네 카페였다. 카운터에 놓인 종을 두어 번 울리면 주인장이 나와 주문을 받곤 했었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수족냉증이 걸리기 쉬운 여름의 뭇 카페들과는 달리 이곳의 다락은 항상 바람이 통하지 않아 후덥지근했다. 바로 그게 마음에 들어서 자주 찾았던 공간. 여름에도 후끈한 다다미의 대나무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도심에 아주 보기 드문 다락방이었다. 이제와선 가끔 그립다.

여행만으로 충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마침내 아주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일탈이 아닌 완전한 탈출을 바라기 위해서.

육교라는 것은 도심의 상징과도 같다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땅으로는 자동차들이 다녀야겠으니 차도 못 끌고 나온 사람들 따위는 하늘로나 힘들여 다니라는 뜻을 내포한 흉물이 바로 육교라고. 꽤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육교 위에서의 해넘이가 잠시간은 아름다울 수 있더라도 그 너머의 도시는 어차피 사람의 삶을 위한 것은 아닐 테니까. 도시를 떠나기 전까지 나는 수백 번의 육교를 건넜었다.

도시 생활에 질려갈 즈음의 도심 대교 전망대 밑에서. 머리 바로 위에는 꼴도 보기 싫은 고층 빌딩들의 실루엣이 바래가는 하늘색을 배경으로 심심하게 늘어져 있었다. 대도시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자기 인생을 스스로 관망하기를 자주 강요한다. 사람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있건 그 억척스런 스카이라인의 데자뷰는 언제고 한 치도 변하지 않을 것이므로.

공주산성시장 앞 제민천을 따라 열리던 오일장. 집 떠나온 어린 강아지들과 중닭들이 쓸쓸한 눈으로 새 주인을 기다린다. 아기 고양이들만 잔뜩 들어있는 철창도 있었는데 개중에 한 마리는 완전히 아사한 상태였다. 이들이 모두 어디로 가려는지 모른다는 의미에서 이 철창 안의 삶들은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의 삶과도 너무도 닮아 있었다. 우리는 모두 갇혀있지 않은가. 오일에 한 번이라는 시한부조차 차라리 부러울 만큼의 날마다 날마다에.

미나리깡 게스트하우스의 토토. 살면서 본 중에 가장 개냥이였다. 뜨내기 손님조차 반길 줄 아는 넉넉한 넉살을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