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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nd of blow
공주산성시장 앞 제민천을 따라 열리던 오일장. 집 떠나온 어린 강아지들과 중닭들이 쓸쓸한 눈으로 새 주인을 기다린다. 아기 고양이들만 잔뜩 들어있는 철창도 있었는데 개중에 한 마리는 완전히 아사한 상태였다. 이들이 모두 어디로 가려는지 모른다는 의미에서 이 철창 안의 삶들은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의 삶과도 너무도 닮아 있었다. 우리는 모두 갇혀있지 않은가. 오일에 한 번이라는 시한부조차 차라리 부러울 만큼의 날마다 날마다에.
미나리깡 게스트하우스의 토토. 살면서 본 중에 가장 개냥이였다. 뜨내기 손님조차 반길 줄 아는 넉넉한 넉살을 지녔다.
평범한 가정집 2층의 미나리깡 게스트하우스. 배낭을 뒷바퀴에서 끌러 오늘 묵을 방에 내려놓을 때의 찰나의 행복감 비슷한 걸 위해서 자전거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설령 어느 여행길에서나 끈질기게 따라붙는 교묘한 중압감까지 벗어던지지는 못 할지라도.
다소 구름 낀 날씨에도 햇빛이 꽤 찬란하게 비추던 이른 아침의 금강교. 사진을 찍은 곳은 금강교 옆의 백제큰다리. 두 다리 모두 자전거로 건널 수 있다.
달빛이 비추는 흐린 새벽하늘 대전 갑천의 강둑 위에서. 손등이 소중해서가 아니라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보고 싶어서 한밤중의 새벽에 다시 길을 나섰다. 서천까지 다녀온 지 한 달 정도 지난 뒤였고 이번 목적지는 공주였다. 아침안개 냄새를 맡으며 6시간을 달렸고 금강변에서만 라이더의 영원한 친구 고라니를 두 마리나 보았다.
원래는 오래된 담배가게였다는 부여의 책방 세간. 서천에서 다시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일하게 잠시 멈추게 만든 곳이다. 해가 지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고 나와 내 자전거는 아침부터 줄곧 뙤양볕에 녹아내리느라 온종일 지쳐 있었다. 타는 목마름을 애써 감출 요량으로 십장생의 장수라도 비는 듯이 길고도 긴 이름의 허브티를 한 잔 마셨다. 겸사겸사 낡은 탁상 앞에 앉아서 책도 한 권 들춰봤지만 당연히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을 거다. 그래도 이런 쉬어감이 없었더라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지 않았을까. 언젠가 다시 찾아와야지 하는 다짐이 으레 그렇듯 그저 다짐만으로 남아버린 그러나 이따금씩은 그저 그곳으로써 때로 생각나는 곳.
비록 펑크라는 씻을 수 없는 반항을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애초 까마득히 무리였을 장거리 여정을 잘 버텨준 알톤이에게 감사한다. 내 가난한 월급봉투로도 세상 어디로든 걸 수 있다는 걸 네가 증명해준 거란다. 그리고 어쨌거나 우리는 말 그대로 한 배를 타고 함께 제주도로 왔고 고생길은 아직도 창창하게 남아 있다.
금강하구둑에서부터 또다시 20km. 바다가 턱밑이었다. 하지만 이 바다를 보려고 200km 가까이를 달려 왔단 걸 아는 건지 짠내를 맡자마자 자전거는 뻗어버렸다. 하구둑사거리 한 켠의 방역차량 검문소 옆에서 쪼그려 앉아 펑크난 타이어를 고치며 꼬박 2시간을 날려먹었다. 결국 바다는 여기까지로 만족하고 이만 포기해야 했다. 장항항 코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어찌보면 이루지도 못한 목표를 위해서 이 생고생을 다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걸 그간 지나쳐온 길들에서 이미 길어올렸다는 사실에는 애써 고개를 돌린 채로. 나는 결국 이 해 여름에 제대로 된 바다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계절이 한 번 바뀐 뒤에는 눈 돌리면 어디나 바다인 섬에 살게 되었다.